"보좌진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없이는 하나도 가능하지 않다."
직장인 97%가 상사 때문에 고충을 겪는다
과거에 훌륭한 삶을 산 지식인이 말년에 이르러 당혹스러운 주장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이따금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리영희 선생의 절필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이 훌륭하니 그대로 따르라고만 한다면, 보통 사람에겐 비현실적인 조언이겠지요. 마치 어설프게 쓰인 위인전처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빠라는 단어는 모호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열정적 지지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별생각 없는 맹목적 지지자를 일컬을 수도 있습니다. 둘은 의미가 꽤 다릅니다. 맹목적 지지자라는 뜻이었다면 대상을 비하한 셈이겠고요. 어떤 판단으로든 설득이 목적이라면 쓸 이유가 없는 표현인 듯합니다. 또 한겨레를 한걸레라고 하는 순간, 촛불 시민의 곁을 줄곧 지켜왔던 한겨레는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셈이 되겠지요. 적어도 그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새날을 꿈꾸며 같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끼리 서로 너무 상처 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도 더 겸손해지길 기대해봅니다.
1997년 8월 발생한 KAL기의 괌 추락 사고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도 기장과 부기장 간의 소통 부재였다. Gladwell(2007)의 '아웃라이어'에서도 괌 추락 사건의 원인을 '경직된 소통 문화', 즉, 상사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완곡어법에서 찾았다. 이러한 강한 위계적 문화 때문에 기장의 권위에 눌려 부기장이 의견을 강력히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부기장이 상사인 기장에게 'No'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면, 288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땅콩회항 사건은 그때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더 생각나게 한다.